소장유물 현황
남도 의병 역사박물관에서 전시·교육·연구 활동을 할 수 있는 의병 관련 유물로, 고문서 및 고서, 무기류, 생활유물, 초상, 사진 등 2027년까지 의미 있는 유물 약 5천 점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단위 : 점)
구 분 | 의병 자료 수집 현황 | 품목별 현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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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계 | 구 입 | 기 증 | 기 탁 | 고문서 | 고서 | 무기류 | 생활 | |
합 계 | 2,835 | 1,351 | 353 | 1,131 | 484 | 2,102 | 134 | 115 |
2019 | 171 | 170 | 1 | - | 15 | 156 | - | - |
2020 | 496 | 496 | - | - | 314 | 130 | - | 52 |
2021 | 1,289 | 155 | 3 | 1,131 | 49 | 1,119 | 63 | 58 |
2022 | 738 | 389 | 349 | - | 94 | 595 | 48 | 1 |
2023 | 141 | 141 | - | - | 12 | 102 | 23 | 4 |
주요 유물
조선 중기 학자인 조헌(1544~1592)은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에서 문인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을 수복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중봉선생문집』은 금속활자본으로 귀중한 가치가 있습니다.
1905년에 변혁연 등을 중심으로 호남의병들의 사적을 목활자로 간행한 책이며 최익현이 서문을 작성했습니다.
이 책에는 임진왜란 의병장 송상현, 고경명, 김천일 등의 사적과 호남 각지에서 의병을 일으키거나 공을 세운 210명의 사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말 의병장 송사 기우만의 문집입니다. 기우만은 전라 남도 장성 출신이며 일찍이 문유文儒로 추앙받았던 인물입니다.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호남의 의병을 모집하여 한양으로 진군하고자 하였으나 고종의 효유 인해 군대를 해산하고 은둔하였습니다.
이지득과 관련된 문서에서는 1781년에 전라도 사람 111명이 이지득 의병활동의 공적을 추천하여 현감, 관찰사, 암행어사가 직접 조사해 임금에게 보고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592년 양대박의 사적을 기록한 책으로 1609년 양경우가 일부를 편집하였고 후세에 목활자와 목판으로 간행되었습니다. 권말의 부록에는 김장생·김상헌 등을 포함한 주변 인물들이 양대박의 업적을 기리는 내용 으로 보낸 5편의 편지가 덧붙여져 있습니다.
창평군수 장복규가 이진사 댁에 의병 등에 관한 사실을 확인하여 전달한 편지입니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 11월 이후에 작성된 것이며, 이승학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됩니다.
1779년 정조의 명으로 간행된 책입니다. 임진왜란 의병 946명(민병 455명), 병자호란 의병 309명 등
호남사람 1,255명의 의적義蹟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방대한 규모의 의병활동을 전해주는 기록입니다.
정묘호란 당시 양호호소사에 임명된 김장생의 활약과 호서 호남의 거병 활동에 관계된 사적과 유문을 정리 하여 금속활자로 간행된 책입니다. 정묘호란 당시 호남 에서 봉기한 의병의 현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 입니다.
공신도감에서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선무원종공신에게 발급한 녹권을 목활자로 간행한 책입니다.
선무원종공신에는 임진왜란 때 전투에서 공을 세우 거나 군수품 보급에 기여한 인물이 선정되고 이를에게는 공신증서로써 녹권이 지급되었습니다.
병자호란 당시 호남지방에서 일어난 의병들의 사실 등을 기록한 책입니다.
김원행이 서문을 작성하였으며 병자호란 당시 호남에서 창의한 의병들이 남한산성을 향해 진격하는 내용 등이 담겨져 있습니다.
임진왜란부터 3.1운동까지 의병 역사에 대한 조사 연구, 전시·교육 등에 활용하고 후대에 전승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일체의 물품을 수집(기증, 기탁, 구입)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전라남도 누리집(구입 공고)를 참고해 주시고, 궁금하신 사항은 전라남도청 문화자원과 의병박물관건립팀 (☎061-286-5341)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유물 소개
황현의 초상 1점과 사진 2점으로, 2006년 12월 29일 보물 제149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초상화는 대한제국시대 전후 최고의 초상 화가로 일컬어지는 석지 채용신(1850~1941)의 작품입니다.
매천梅泉 황현黃玹 (1855~1910) 선생은 한말 4대 시인중 한명이자 우국지사입니다.
1910년 일제에 의해 국권 피탈이 되자 국치를 통분하며 절명시 4편을 남기고 음독 순절 하였습니다.
<매천야록梅泉野錄>은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 총서 제1권으로 발간되어 한국 최근 세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가 됩니다.
<매천야록> 등 매천 황현 저서 등 국가 등록문화재 91점
- 매천야록
- 매천 시/문
- 오하기문
- 절명시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