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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자료

인물

임진왜란 호남 최초, 유일한 근왕의병장, 김천일

  • 도내뿐만 아니라 경기도, 강화도, 경상도에 원정하여 왜군을 물리쳤고 도성을 탈환해 선조로부터 창의사를 받음.
  • 진주성 전투에 참여, 호남을 지켜냈으며 이로 인해 호남은 군병과 군량을 제공하여 임란 극복의 전진기지가 됨

전선과 병기를 만들어 조선수군 전력 증강, 최희량

  • 정유재란때 흥양현감에 특별 임명되어 통제사 이순신 휘하에 배속
  • 명량해전에 참전하여 공을 세웠고 1598년(선조 31) 당시 일본군과 조선군이 대치한 최전선인 흥양 첨산 등지에서 일본군을 격파

전거북선으로 해상의병에 앞장서 바다를 지킨 나대용

  • 임진왜란때 이순신 휘하에서 거북선 정비, 옥포·당포·사천 전투에서 왜적선을 침몰시키고 불태워 대승
  • 정유재란때는 명량해전과 노량해전에 참가하여 공을 세움
  • 그밖에 이순신 휘하에 나치용, 나득룡, 오득린, 나덕신, 정상·정여린 부자 등 그의 혈족들이 종군하여 해전에서 많은 공을 세움

정유재란 최후의 의병장 소의장 임환

  • 임진왜란 때 창의사 김천일의 종사관으로 활약
  • 정유재란때 이순신에게 수백석의 군량미를 보내고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을 뒤쫓아 조명연합군 최후의 수륙합동전투인 순천 왜교성 전투와 광양만 해전에 참전하여 그 용맹함을 명군이 인정

정유재란 최후 의병전쟁의 역사를 기록한 진경문

  • 강화 및 경기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하였고, 1596년 정유재란때 임환 의병장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순천 왜교성으로 진군하여 우의정 이덕형, 도원수 권율 휘하에서 활동

정유재란 영산강 항전의 의병장 최 욱

  • 정유재란때 家僮 100여명과 영산강가의 동강면 백련산에 나아가 진을 치고 영암에 격문을 보내 김덕흡과 함께 접전을 벌이다 순절

한말 호남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나주의병 24인

  •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격분, 나주향교에 모여 의병을 봉기, 단발령에 앞장선 안종수 등 3명의 관리를 살해하고 창의소 설치 및 활동

3대가 나라를 구하는데 앞장선 김창곤-김철-김재호

  • 김창곤이 단발령에 항거하여 참서관 안종수를 처단하는 등 의세를 떨쳤고, 그의 아들 김복현은 3·1만세운동 때 광주 만세운동을 주도, 손자 김재호는 상해임시정부 광복군에 들어가 부인과 함께 헌신

한말 호남창의회맹소 선봉장 죽봉 김준과 김율 형제

  • 김준은 기삼연이 호남창의회맹소를 결성할 때 선봉장을 맡아 활동
  • 동생 김율은 나주, 창평, 광주 등지에서 활동

한말의병장 조정인과 조정룡 형제

  • 한말 미곡상을 차려 의병들에게 식량 지원, 김준 부대에 합류 활동
  • 함평에 탄약제조소를 만들어 놓고 나주, 함평, 장성, 영암, 영광, 담양, 광주 등 활약, 김태원 사후 독자적으로 부대를 이끌다 체포 사형

향리가문출신 대표 의병장 박사화, 박민홍, 박여홍, 박양수

  • 박사화는 1907년 김준 부대에 들어갔다가 5월 심남일의 중군장으로 전투에 참여했고 1909년 독립부대를 이끌고 나주 왕곡면에서 영산포헌병대와 전투 중 잡혀 사형, 동생 및 8촌간인 일족 함께 활동

남한대토벌이 끝날 때까지 활동한 주요 한말의병장 나성화, 박사화

  • 심남일 부대의 후군장으로, 박민홍 의진에서 활동하였으며 1909년 초에 독립된 의병진 400여명을 갖추고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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